지금까지 종이책만 대상으로 하던 베스트셀러 집계 방식이 바뀔 모양이다. 국내 서점가에 전자책과 종이책 판매량을 묶어 베스트셀러를 집계하는 방식이 확산되는 추세다.
인터파크를 선두로 국내 주요 서점이 종이책과 전자책을 합산해 베스트셀러를 집계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인터파크는 올해 1월부터 이미 시행해 왔으며, 알라딘은 12월22일 종이책과 전자책을 합하여 베스트셀러를 집계하기 시작했다. 이 대열에 예스24와 교보문고도 곧 가세할 것으로 보인다.
종이책과 전자책을 동시에 파는 주요 온라인 서점을 방문하면 베스트셀러를 집계한 페이지가 있다. 인터파크와 알라딘은 이곳에서 베스트셀러를 ‘전자책’과 ‘종이책+전자책’으로 나눠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흔히 ‘베스트셀러’라고 부르고 연말이면 신문을 장식하는 베스트셀러에 전자책이 포함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인터파크에서 집계한 종이책+전자책 베스트셀러
인터파크는 “출판사가 전자책을 종이책과 같게 인식하도록 하자는 관점에서 기획했다”라고 전자책과 종이책을 합산해 베스트셀러를 집계한 배경을 밝혔다. 인터파크의 설명을 자세하게 들어보자.
“베스트셀러 집계에 전자책과 종이책을 합산해 전자책도 책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10개월 남짓 운영하며 출판사가 조금씩 전자책에 관심을 돌리는 모습과 전자책의 인기를 기반으로 종이책 판매량이 늘어나는 일도 경험했고요.”
알라딘도 인터파크와 비슷한 이유로 전자책을 베스트셀러에 통합하기 시작했지만, 시작은 엇갈렸다. 김성동 알라딘 팀장은 “출판사의 요구를 따랐다”라며 “중요한 건 ‘전자책 또는 종이책으로 팔렸느냐’가 아니라 ‘이 책이 많이 팔렸느냐’이다”라고 계기를 설명했다. 알라딘은 인터파크와 마찬가지로 전자책 베스트셀러를 따로 떼어냈지만, 종이책은 전자책과 합산한 종합 베스트셀러로만 집계한다.
예스24는 “내년 1분기 내에 종이책+전자책과 전자책 베스트셀러를 나눠 도입할 예정”이라며 “종이책에 비하면 적은 편이지만, 전자책 판매량이 높아지는 상황이고 전자책 독자의 기호도 전체 출판시장 독자의 반응이라고 본다”라고 밝혔다. 교보문고는 “내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알라딘이 제공하는 전자책+종이책 베스트셀러
‘베스트셀러 마케팅’ 우려도 제기돼
하지만 전자책을 베스트셀러 집계에 포함시키는 움직임이 마냥 환영만 받는 건 아니다. 우선,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동시 출간한 도서와 전자책 혹은 종이책으로만 출간된 도서에 대한 차별이 우려된다. 베스트셀러는 판매량을 기준으로 하는데 종이책 판매가 둔화한 상태에서 전자책 판매량이 늘면 종합 베스트셀러 집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전자책 시장 활성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전자책을 베스트셀러 집계에 합산시키는 것은 전자책이 베스트셀러 만들기를 위한 홍보 도구로 활용돼 전자책 가격을 지속적으로 낮추는 단초로 작용할 여지가 많다”라는 내용의 협조 공문을 회원사와 서점 쪽에 발송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김영사, 창비,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열린책들 등 국내 주요 출판사 423곳을 회원사로 둔 곳으로, 출판인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정종호 청어람미디어 대표는 한국출판인회의의 입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책을 파는 최고의 마케팅은 베스트셀러 선정이라는 말이 있다. 이 와중에 전자책을 종이책 베스트셀러에 합산하게 되면 출판사는 종이책을 팔기 위해 전자책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내놔 순위를 높이려 한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저자 인세, 유통사 수수료, 출판사 수익이 떨어지게 돼 전자책 시장은 성장하기 어려워진다고 정종호 대표는 내다봤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도 “전자책 시장이 종이책의 10%도 안 되는 상황에서 합산해 집계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시장을 일으키려는 것으로 보이며, 전자책 시장을 빠르게 확장하기 위한 유인책은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옳지 못한 결정”이라며 “특정 업체가 집계하고 거래하는 것도 문제”라고 경고했다.
지금 전자책 시장은서점과 출판사간 힘겨루기를 하며 서점마다 파는 전자책이 다른 상황이다. 총판을 통해 여러 서점에 일괄 판매되는 종이책과 달리 전자책은 독점 판매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자책이 종합 베스트셀러에 포함되며, 서점과 출판사간 은밀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이 가운데 전자책 시장의 내실을 키우는 것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한기호 소장의 설명이다.
제조업체, 이동통신사까지 뛰어드는 전자책 시장은 현재 출판 시장의 1~3% 규모로 출판계는 추산한다. 베스트셀러 합산이 앞으로 전자책 시장을 견인할지는 두고볼 일이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